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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전쟁의 시대, 레이코프를 다시 읽다

by briantracy 2025. 3. 12.

정치적 언어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진실과 허위의 경계가 흐릿해진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특히 선거철이 다가오면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뒤흔든다. 이런 상황에서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시대를 꿰뚫는 통찰을 제공하는 책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언어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사고와 세계관을 형성한다는 프레임 이론은 오늘날 정치, 언론, SNS 커뮤니케이션에서 필수적인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프레임 전쟁이 일상이 된 지금, 왜 레이코프를 다시 읽어야 하는지를 본문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프레임 이론의 핵심: 단어 하나가 세상을 바꾸는 이유

조지 레이코프는 인지언어학자이자 정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로, 프레임 이론을 통해 인간의 사고 방식이 언어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모든 사고는 프레임을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이 어떤 단어를 접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사실조차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고 설명한다.

대표적인 예로 ‘세금 감면’이라는 표현은 듣는 사람에게 자유, 여유, 혜택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동일한 현상을 ‘사회적 투자 축소’라고 말하면, 사회적 책임 방기, 복지 축소라는 전혀 다른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것이 바로 프레임의 힘이다. 단어 선택이 개인의 사고방식과 가치 판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는 곧 정치적 입장 형성으로 이어진다.

레이코프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문장을 예로 들며, 부정적인 표현조차도 해당 프레임을 활성화한다고 경고한다. 즉, “나는 부패하지 않았다”는 말은 듣는 순간 청중의 뇌 속에 ‘부패’라는 이미지가 자동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뇌는 부정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것을 떠올려야 하기에, 어떤 프레임을 반박하려는 시도조차 그 프레임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정치 커뮤니케이션 속 프레임의 실전 적용

오늘날 정치 무대는 정책보다 언어의 선택이 훨씬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슬로건, 해시태그, 발언 한 마디가 여론을 결정짓는 시대다. 이 과정에서 프레임은 무기가 된다. 정치인은 자기가 유리한 프레임을 먼저 제시하고, 상대는 그 프레임 속에서 방어적인 입장으로 끌려 들어간다. '귀족 노조', '검수완박', '빨갱이', '이념 교육' 같은 용어들은 각각 특정 진영의 프레임 전략으로, 단어 하나에 엄청난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

레이코프는 보수 진영이 감성적 언어, 비유, 은유를 잘 활용하여 효과적인 프레임을 형성해왔음을 지적했다. 반면 진보 진영은 데이터, 팩트, 논리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설득하려 했지만, 감정과 가치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 전달력이 약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정치적 설득은 이성보다 감정의 영역에서 이뤄진다”고 말하며, 가치 중심의 스토리텔링과 상징적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디어 또한 프레임의 생성자다. 언론의 헤드라인, 자막, 인터뷰 편집 방식은 특정 프레임을 주입하거나 고착화시킨다. 반복되는 프레임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사람들의 인식에 뿌리내리며, 점차 ‘상식’으로 자리잡는다. 이는 정치뿐 아니라 사회적 이슈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환경, 여성, 노동, 안보 등의 담론에서도 단어 하나의 선택이 수많은 사람의 인식을 좌우하게 된다.

지금, 왜 레이코프를 다시 읽어야 하는가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은 더욱 빠르고 확산력도 강하다. 그만큼 프레임이 작동하는 속도와 강도도 강력해졌다. SNS 알고리즘은 사용자에게 익숙한 프레임에 기반한 콘텐츠만 보여주며, 이는 확증편향과 진영논리를 강화시킨다. 사용자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프레임은 그렇게 디지털 세계의 인식 구조를 지배하고 있다.

레이코프의 이론은 단순한 언어 분석을 넘어, 오늘날 사회 갈등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 왜 사람들은 가짜뉴스에 쉽게 속는가? 왜 논리적으로 반박해도 상대는 믿음을 바꾸지 않는가? 왜 사회적 합의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레이코프는 ‘프레임’이라는 개념으로 설득력 있게 답한다. 그는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감정, 가치, 세계관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그는 단순한 비판에서 멈추지 않고, 프레임을 바꾸기 위한 실질적인 전략도 제시한다. 기존 프레임을 단순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 프레임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낙태 반대’라는 프레임에 맞설 때 ‘선택의 자유’라는 대안을 내세워야 하며, ‘세금은 짐’이라는 인식에 대응하려면 ‘공동체에 대한 투자’라는 관점을 강조해야 한다.

결론: 프레임을 이해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단순한 정치서가 아니다. 그것은 언어가 어떻게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고, 사회를 움직이며, 현실을 재구성하는지를 설명하는 현대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고전이다. 특히 ‘프레임’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정치인이나 언론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뉴스를 소비하고, 의견을 형성하고, 토론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수적인 사고 도구다.

프레임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누가 맞고 틀리냐를 판단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누가 어떤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힘이며, 그 틀을 스스로 전복할 수 있는 인식적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결여되면 우리는 타인의 언어, 타인의 세계관에 갇힌 채 살게 된다. 결국 그것은 자율적 사고를 잃고, 조작된 여론의 흐름에 휩쓸리는 삶으로 이어진다.

정치는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싸움이다. 그 말의 프레임을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권력이 이동한다. 레이코프는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해석된 현실만 존재한다"고 말하며, 우리가 사고하는 모든 방식이 언어적 틀에 의해 규정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언어에 민감해야 하며, 프레임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 속에서 스스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가짜뉴스, 혐오 담론, 편가르기가 심화된 시대에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단지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전략서가 아니라, 개인이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기 위한 철학적 도구이며, 민주주의의 방어선이다. 지금 당신이 접하는 말, 문장, 메시지 뒤에 어떤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는가? 이제는 그 틀을 읽어내고, 스스로 프레임을 짤 수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할 시간이다.